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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세계를 열어가려면 아들은 어떤 방식이든 아버지를 치받아야 한다.

문명사적 딜레마다. 그래서 역사의 위대한 인물은 대부분 아버지가 없다.

그들의 아버지는 가정 폭력을 일삼거나 무책임하게 집을 나간다. 의붓아버지밑에서 자라기도 한다. "

 

- 여러가지 문제연구소장 김정운 [남자의 물건] 中

 

 


 

이 글의 일부분은 내 이야기이다.

 

그래서인지 심히 공감이 가는 대목이다.

 

바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이다.

 

나는 만 스무살이 되던 해 어린 나이에 상주가 되었다.

 

나 역시 아들이기에 아버지를 치받아보고 싶었다. 아버지는 내게 넘어서고 싶은 존재였다.

그래서 열심히 살았다.

아버지에게 결국은 잘보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는 아버지를 원망했지만 사실 원망이 아니라 질투였는지도 모르겠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매우 힘들게 하시고, 마음아프게 하셨다.

 

결국 우리 가정은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이혼을 하는 아픔을 겪었다.

부모님의 이혼보다도 더 큰 아픔은 주변의 방관이었다.

 

누구하나 따스하게 먼저 다가오는 이 없었다.

그때 내게 큰 힘이자 위안이 되어준 것은 엄마 그리고 누나 이외에

'책'이었다.

 

구절 구절 내 뜻을 다 받아주었고, 나를 위로해 주었다.

추운 겨울에도, 더운 여름에도 내 친구이자 나를 위로하고 응원하는 버팀목이었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살고 계신 길 건너 가게에 다른 여자와 살면서,

가게를 오픈했다.

 

어린 나로서는 충격인 동시에 아버지가 원망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해 겨울 나는 아버지와 법정에 서는 아픔을 겪었다.

 

이유는 돈 때문이었다.

어머니에게 받기로 한 6천 만원,

사실 아버지는 어머니와 살면서 통장 계좌 비밀번호를 변경한 후

도리어 어머니한테 6천만 원을 더 받아야 한다는 이유였다.

 

그 이유로 아버지는 어머니 집에 가압류를 걸어 놓고,

결국은 나와 누나 어머니를 상대로 법정에 서는 아픔을 겪었다.

 

어린 나이 법이라는 것이 원망스러웠고, 아버지가 고용한 변호사도 원망했다.

정말 미웠다.

모르면 죄가 되고, 돈이 없으면 죄가 된다는 것을 어린나이에 깨닳았다.

 

결국 법원에서는 아버지 손을 들어주었다.

어머니는 겨우네 힘겹게 고생하시며 번 돈을 결국 아버지께 빼앗길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정말 아버지를 넘어서고 싶었다.

치받고 싶었고, 때려 눕히고 싶었다.

그런데 그럴 용기도, 힘도 없었다.

나조차 힘이 없는 나 자신을 원망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깨닫게 되었다.

"원망"은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을 깨닳았다.

 

원망보다도 깨닳음의 답은 용서이다.

'원망과 복수보다도 결국에는 용서가 해결책이더라' 고 깨닳았다.

 

엄마, 누나 그리고 나를 힘들게 만든 아버지

나는 정말 아버지가 잘 사실 거라고 믿었다.

 

가족의 눈에서 눈물을 흘리게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버지는 몰락의 길을 걸었다.

 

빚은 사채까지 30 억 원 가까이 되었고, 신용회복이 불가능해 질 정도로 몰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내게 남겨주라던 시골의 작은 밭까지 결국에 다른 사람 손에 넘어 가게 되었다.

 

아버지의 몰락은 내게 정말 큰 충격이었다.

그런 아버지가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았던 아버지는

내가 만 스무살이 되던 해 새벽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셨다.

 

정말 소설과도 같은 이야기이지만, 내 이야기이다.

영안실의 그 소독 냄새, 사고를 당한 아버지의 모습, 그리고 마지막 내게 남겨진 유골함

지금에 와서 모든 게 다 용서가 되고 보고싶고, 만져보고 싶고, 육성을 듣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

이 세상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버지를 사망케 한 남자는 음주운전을 했고, 차량 역시 보험에 가입되지 않은 차량이었다.

그 남자는 결국 형량을 살았고, 아버지는 손해보험, 생명보험이 10개가 넘게 있었지만

모두가 실효되었다.

 

 

하나 남은 것이 1억 여원 이었다.

그마져도 아버지 장례를 치러드리고, 이런 저런 일을 해결하며 실제로 남는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를 돌아가게 만든 운전사도 마음 속으로 용서를 했다.

모든 것을 내려 놓았다.

아버지의 빚마져 상속포기를 하며 내려 놓게 되었다.

 

나는 정말 큰 인물이 될 것이다.

아마 운명적으로 나는 그렇게 큰 인물이 되라고 태어난 것 같다.

 

 

어린 시절 우리집 저금통은 석수 생수통이었다.

그곳에서 동전은 넣지 않고 죄다 만 원짜리로만 채워 넣었고,

몇 일씩 장사를 하면 아버지는 양손에 현금을 몇 천만원씩 쥐고

은행으로 향했다.

 

그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다.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모든 것을 내려 놓았다.

 

마음의 짐, 그리고 할아버지의 논과 밭도 마음 속에 내려 놓았다.

내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이제부터 채우기 시작할 것이다.

내가 우리 집안을 일으켜 세울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내게는 아버지는 계시지 않지만, 그보다 훌륭하신 내 어머니가 옆에 계시기 때문이다.

 

24살까지 될 지는 모르겠지만 1억 원을 현금으로 만들 것이다.

저축하고, 투자하고, 공부하며 말이다.

 

지금 나는 국민은행 VIP 고객이다.

그리고 주식투자를 하고 있고, 내년부터는 경매, 공매를 통해 부동산에도 투자할 것이다.

 

추 후에는 HACCP 시설을 갖춘 식품 제조업 공장을 건설할 것이며,

미국 FDA에 승인을 받아, 이베이를 통해 미국으로 수출을 하고, 여러 나라에 내 상품을 수출할 것이다.

 

빌딩을 지어 임대료도 받고, 내회사를 주식회사로 만들어 상장도 시킬 것이다.

내가 책을 쓴 것은 베스트셀러가 되고 세계 여러 나라로 번역되어 출간될 예정이다.

 

나는 인세료만 해도 어마어마 하고, 매 분기마다 배당금도 받고,

곳곳에서 나를 초빙하여 강연도 바쁘게 할 것이다.

월 별로 임대료도 받는다.

물론 시간당 내계좌에는 돈이 계속 입금될 것이다.

내 상품을 온라인으로 판매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 가게도 더욱 번성시키고, 내 행보는 거침이 없다.

나는 그렇게 살 것이다.

 

나는 가족들에게 힘이 되주는 버팀목이자, 남들에게도 도움이되는 큰 인물이 될 것이다.

"큰 인물이 되자" 내 모교인 휘문고등학교 교훈이다.

 

나는 내 꿈을 응원한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당신의 꿈도 응원할 것이다.

 

내가 왜 이런 글을 남기느냐 하면

내 경험상 글로 남긴일 치고 인간이 이루지 못했던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생생하게 꿈꾸면 이루어진다 했던가 그런데 하나 더 추가하자면

글로 남기는 일이이다.

 

당신도 간절히 원하는 것들을 글로 남겨보는 시간을 가져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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