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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 없던 내게 책은 길을 내주었다




"희망이 없던 내게 책은 길을 내주었다."

TV를 시청하지 않는 나는 얼마 전 어떤 중년 여성 연예인이 하는 말을 주의 깊게 들을 수 있었다. 


이름은 잘 기억에 남지 않지만 

중년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미모의 여자 연예인이였다. 



그녀는 불확실했던 20대에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말을 했다. 

너무 불확실했고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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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현재 지금의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현재가 너무 좋다는 내용을 어렴풋이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성별도 다르고 연령대도 다르지만 어느정도 그녀의 심경을 조금은 헤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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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대 시절 정말 많은 일들을 겪을 수 있었고 그때는 내게 주워진 환경과 현실이 너무나 싫었고 때로는 부끄러웠고 

원망스럽기도 했다. 



친척 식구들과 외가 식구들 모두 우리 가족을 외면했던 시절이 있었다. 




자랑은 아니지만 이제는 부끄럽지 않은 부모님의 이혼... 

그리고 2010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 신 일... 



정말 슬프면 울음이 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 때 알 수 있었다. 

정말 아프면 아픔을 모른다. 

정말 슬프면 울음이 나지 않는다... 


가슴이 찢어 진다. 

저미어 온다... 


정말 슬프면 엉엉 소리 낼 수 없다. 

슬픈데 울음이 나지 않을 때가 정말 슬픈거다... 






고등학교 2학년 때에는 어머님을 위해 아버지와 법정에서 다투었다. 

아버지는 누나와 내 학비를 내주시지 않았으며 보험료와 통신비용도 끊어 버렸다. 


이혼 하실 때 어머니로부터 현금 3억원 정도 가져가셨고 바로 앞에 동종 업종의 가게를 차리셨다. 

이혼하는 위자료로 6천여 만원 어머니 통장의 비밀번호도 변경하시고 특별 변호사를 선임하시고 아들과 딸이 법정 반대편에 

서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이기셨다. 


그리고 그해 겨울 힘겹게 장사하시고 모으신 어머니의 수표 6천여만원까지... 

죄다 가져가셨다.



모든 것들이 고등학교 1학년 말부터 2학년 말까지 단 1년간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부터 줄 곧 운동부 선수생활을 한 나로써는 정말 감내하기 힘든 상황이였다. 


그당시 어머니는 무척 힘드셨다. 

경제적으로도 그리고 심적으로도... 


그런 일이 있고 나는 체육고등학교를 뛰쳐나왔다. 

도망가듯 뛰어 나왔다. 









운동을 그만두고 서울 대치동으로 전학을 갔다. 

어머니는 힘든 와중에도 대치동 8학군 고등학교에서 무사히 졸업할 수 있도록 학비를 대주셨으며 

용돈도 주시고 반찬거리도 보내 주셨다. 



공부잘하는 강남 8학군 아이들 속에서 줄곧 운동만 해온 나는 수업 중 잠도 마음 편히 잘 수 없었다. 

아이들이 너무나 열심히 공부하기에 잠을 자는 것 조차 미안할 뿐이였다. 



나보다 더 열악하고 힘든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도 많이 있을 것이다. 

그때 나는 어떤 말도 어떤 물질로도 위안을 받을 수 없었다. 








성격은 더 소심해졌고 세상을 향한 마음의 문은 더 단단해 졌으며 한마디로 미래가 없었다. 

이혼한 부모의 자녀이고 운동을 포기하고 공부도 못하는 그저그런 아이가 아닌 정말 둔재였다. 



이때 내게 힘이 되어주고 말을 걸어주고 뭐든지 할 수 있다고 말해주고 

아직 늦지 않았다고 다독여 주었던 것이 바로 '책'이다. 



미래도 없고 인생의 비전도 없던 내게 책은 먼저 말을 걸어 주었고 비전을 제시했으며 

길까지 안내해 주었다. 


그때부터 성격도 조금씩 활발해 지기 시작했다. 

그당시 심리 치료는 받지 못했지만 또 그럴 수 있는 상황도 아니였지만 


분명, 내게는 마음에 병이 있었을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한국어임에도 불구하고 모르는 어휘는 옆에 짝궁, 

그리고 앞에 앉아있는 친구들에서 서스름 없이 묻고 또 물어 보았다. 


처음에는 동급생에게 묻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줄 알았지만 사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지 못하는 

내가 더 부끄러웠다. 



그때부터 책을 읽으면 필사하고 모르는 단어나 구절이 있으면 개인 노트에 메모하는 습관을 가졌다. 

물론 그런 습관은 지금도 계속되어 요즘은 메모도하고 에버노트와 같은 어플리케이션에 옮겨 적기도 한다. 



오늘날에 이르러서 내가 큰 성공을 아직 거두지는 않았지만 

친가나 외가 식구들에게 종종 이런 소리를 듣곤한다. 



내 이야기를 하시며 "내가 정말 술도 먹지 않고 담배도 피지 않고 말썽 부리지 않고 자라는게 정말 신기하다."

오히려 내 사촌 동생들은 학교를 다니며 사고를 많이 쳤지만 의외로 나는 반듯하게 자랐다. 




책을 읽으면서부터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그저 그런 삶이 아니라 제대로 한 번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을 때 나는 대형서점에 찾아 카펫 바닥에 앉아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읽었고 

친구들 수능 공부 열심히 준비할 때 하라는 수능공부는 안하고 고전부터 정말 많은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과 얻윽 수 있는 해답이 정말 책 뿐이였다. 


객관적으로 그렇게 좋은 대학은 아니지만 대학교 재학시절 줄 곧 장학금을 받으며 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 



힘들게 어머니 가게 일을 돕고 학교에 가서 공부하고 집에와서 잠을 자는 순간 

대학시절 내게 음주가무는 남의 얘기였으며 정말 사치였다. 



때로는 활어차로 장을 보기도 하고 수업시간에 맞춰 활어차를 타고 학교에 간적도 있다. 

한 번은 활어차에서 내리는데 선배가 내 모습을 보고 조금 놀리기도 했지만 부끄러운 줄 몰랐다. 


지금도 어리지만 그때는 더 어렸기 때문에 

힘들게 일하고 학교에서 몇 시간 배우는 그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는 사실을 그 때 알 수 있었다. 



공강이나면 시간이 아까워 줄곧 대학 중앙도서관에 가서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었다. 


전공 강의실을 가는 횟수보다 대학 중앙 도서관을 하루에 방문하는 횟수가 세 배 이상 많았다. 



책을 읽으면 남이 절대로 당장 알아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행동이 습관이 되고 몸에 자연스럽게 익힐 쯤이면 마인드부터 모든 것들이 변한다. 










비천하고 천한 사람이 조금씩 빛이 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조금씩 누군가 빛이 나는 나를 알아봐 주기 시작한다. 


조금씩 어울리는 부류가 달라지며 좋은 선배, 그리고 스승님들이 이끌어 주신다. 

정말이지 시궁창에서 꺼내어 주신다. 



이렇게 길 안내를 받고 하루하루 그저 따랐을 뿐인데 

내 삶에 변화가 일었다. 


작가가 될 수 있었고 많은 기업과 공사, 정부기관에서 대학교 재학생임에도 불구하고 

초청을 받아 게스트룸에서도 묶고 VIP 대우를 받으며 강연 할 수 있었고 잡지 매거진 특집에도 실렸으며 

공영방송은 아니지만 케이블 TV 인터뷰 요청과 라디오 인터뷰 요청 그리고 꿈에 그리던 TED 강연에도 설 수 있었다. 



책을 17살부터 치열하게 읽고 그로부터 약 9년 동안 내게 벌어진 일들이다. 


나는 정말 책으로부터 새로워 질 수 있었고 조금씩 위대해 질 수 있었다. 









지금도 운동을 계속하는 친구들이 지금의 나를 부러워 하기도 하며 

강남 8학군 명문 휘문고등학교 친구들이 나를 만나 커피를 마시고 이야기 하고 자신들의 고충을 들어달라고 많은 

상담을 요청하기도 한다. 



소설 같지만 전부 내게 일어난 실화들이다. 



지금의 현실이 너무 힘들고 앞이 보이지 않고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남에게 의지하지 말고 홀로 책을 펴라... 



기꺼이 고독을 마시며 숨을 죽인 채 내공을 쌓아라... 

읽고 또 읽고 눈이 피로하다 눈물을 흘릴 때까지 책에 심취하고 빠져보고 흐느껴보라... 



결국에는 빛이 보이지 않는 그대 앞에 

서광이 비추어지기 시작하며 비전을 제시해 주고 길을 안내해 줄 것이다. 



명절, 그저 그런 사람들과 술 한잔을 기울이며 신세 한탄을 하지 말고 남의 이야기는 이제 그만

고독 속에서 책을 펴라.


그 속에 답이 있다. 


당신은 분명 지금보다 더 더욱 위대해 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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